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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 프로이드칼럼: ‘환상’의 기원과 기능, 의미에 대한 ‘정신분석’의 해석
  • 작성자 : 비움심리상담
  • 작성일 : 2017-09-15
  • 조회 : 4013

‘환상’의 기원과 기능, 의미에 대한 ‘정신분석’의 해석

 

1) 환상의 원인   


<프로이트>

쾌락도 없고 현실 이익도 없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힘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정신분석을 창시한 초기에 프로이트는 그 힘이 유년기에 받은 어떤 ‘상처’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조상이 겪은 ‘큰 사건’이 본능욕동에 흡수되어 ‘기질’로 유전된 경우나, 유년기에 큰 상처를 받고서 억압한 자는, 기질과 상처흔적의 힘에 의해 스스로 상처받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이후에 프로이트는 신경증자들이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받았다는 상처(‘성적 유혹과 좌절’)가 ‘사실’이 아닌 일종의 ‘환상’이라고 재해석한다. 신경증자는 무의식에 “나는 ~로부터 상처받았어!”라는 환상적 생각과 부정적 감정을 지니며, 이 환상과 정서에너지가 신경증 증상을 일으켜 반복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개인의 무의식에는 태고적부터 유전된 본능이 일으키는 인류공통의 ‘원초적 환상’과 어린 시절에 좌절된 욕구를 ‘보상’받기 위해 만들어낸 ‘유아적 환상’이 있다. 즉 충족되지 못한 욕동이 환상을 만들어내는 근원인 것이다. 

유아적 환상은 구강기의 탐욕과 박해환상, 자아전능 환상, 항문기의 가학-피학 환상, 외디푸스 성환상과 거세환상 등으로 구성된다. 이 환상들은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거나 성찰되지 않을 경우, 무의식에서 평생 동안 원상태로 보존된다. 그 결과 개인의 현실인식은 무의식의 환상들에 의해 왜곡되며, 환상을 현실에서 충족하려는 비합리적 욕망과 행동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환상의 현실적 충족이 불가능할 경우, 환상은 꿈ㆍ신화, 예술작품, 증상, 실수 등의 파생물들을 생성하여 자체를 다양한 양태로 드러낸다. 

통합되지 않은 부분 충동들로 구성된 ‘유아성욕’(유아의 쾌락욕구)과 ’유아성환상’은, 유년기 말기에 초자아(양심)가 형성된 이후 초자아의 금지명령에 의해 대대적으로 억압된다. 그 결과 어린아이에겐 자연스럽던 유아적 쾌락욕구와 유아적 환상들이 유년기 이후엔 유치하고 위험한 금지된 무엇으로 부정되어 망각된다. 그런데 이 금지압력으로 인해 유아성욕과 유아성환상이 무의식으로 억압ㆍ망각됨으로써, 그것은 인간의 감정과 사고를 평생 좌우하는 영원하고 강렬한 무의식적 욕망의 ‘원인’이자 모델이 된다. 강렬한 정서를 일으키는 욕망은 대부분 유아성욕과 연관된 무의식의 욕망이다. 그것이 ‘무의식’이어서 자각하기 힘들기 때문에, 나이와 무관하게 불변한 채 ‘반복’되는 것이다. 

정신분석의 중요한 과제는 욕망에 결합되어 있는 무의식의 어떤 생각-표상-감정들이 ‘지금의 현실’과 무관한 과거적 ‘환상’임을 성찰하여, 인간을 원시적ㆍ유아적 환상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환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현실 삶에 대한 왜곡 없는 인식과 ’주체적 향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원시적이고 유아적인 환상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인 동시에 ’욕망을 일으키는 구조적 요인’이라는 점이다. 환상들은 (태어날 때부터) 심리세계를 구성하는 ’심리 내적 실재’이다. 따라서 유아적 환상이 완전히 해체될 경우, 그(녀)는 갈망과 불안에 반복해서 휘둘리는 신경증 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자아에너지를 유아적 쾌락과 무관한 영역들에 몰입시켜 냉철하고 안전한 현실 인식과 현실적응을 이룰수도 있다. 그런데 (본능적-유아적) 환상이 완전히 제거된다면, 각별한 강한 욕망이나 쾌락에 휘둘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어떤 상태’에 처하게 된다.(해탈? ’무기공’?) 

인간에겐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욕망활동 자체가 중요하다. 욕망이 없으면 인생은 무덤덤해진다. 그것은 ‘고통 없는’ 상태인 동시에 죽음처럼 무미건조한 상태이다. 무의식에 위치하는 (본능적-유아적) 환상들은 ’지금 여기’의 현실을 왜곡시켜 실재에 대한 진정한 인식을 평생 방해하는 신경증의 원인인 동시에, 삶의 활력을 주는 욕망의 원인인 것이다. 

말년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 내담자에게 제공하는 ‘무의식 해석’이 그 진리성이 엄밀히 검증되는 ‘과학적 설명’이기보다, 내담자와 분석가 사이의 관계 속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하는 일종의 ‘심리적 구성’임을 자각한다.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인간의 정신조직은, 자신의 인식내용이 실재에 대한 엄밀한 인식임을 주장할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원초적 본능상태로 태어난 아기는 고통스런 외부자극과 내부충동의 과잉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방어기능을 지닌 정신기관인 자아를 이드로부터 ‘분화’, 발달시킨다. 학자들이 주목하는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활동은 자아 활동들의 일부로서, 언제나 ’개체의 안전한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배경으로 작동된다. 즉, 자아는 ‘개체의 안정된 보존’이라는 기본목적에 부합되는 한에서만, 실재에 대한 정확한 인식활동을 꾀할 수도 있고, 왜곡된 환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개체가 정신적으로든 외부적으로든 극히 위험할 경우엔 자기자신과 외부세계를 왜곡해서라도 개체의 안정(정신균형)을 도모하는 방어기능을 작동시킨다. 즉 자아는 객관적 인식의 원인인 동시에 주관적 환상의 원인인 것이다. 

만약 자아가 자립적 정신기관이라면, 자아는 독립적인 인식활동을 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아는 본능(원초아)으로부터 활동에너지를 제공받아야 하고, 초자아의 명령과 감시를 받아야 하며, 냉정한 외부세계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여러 조건들에 속박되어 있다. 따라서 자아가 자립적 실체가 되지 못하는 한, 자아는 객관적 인식과 행위의 주체인 동시에 (내적) 환상의 그릇이 된다. 자아의 제1임무가 ‘참/거짓’, ‘진실/환상’에 대한 엄밀한 성찰이 아니라 ’유기체의 안전한 보호’이기에, 자아의 인식내용에는 본질적으로 환상과 실재가 혼합되어 있다. 이것이 자아와 ‘인식’의 특성이자 한계다. 

이런 상황에서 혹자가 모든 ‘환상’은 반드시 해체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먼저 그(녀)에게 그런 주장의 논리적 근거와 심리적 이유를 함께 물어야 한다. 만약에 ‘환상’이 인간성의 본질 조건이고 때로 인간의 생존에 유익한 무엇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환상은 왜 반드시 해체되거나 극복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 물음을 진지하게 물은 자는 현대철학의 선구자인 니체와 프로이트다. 니체는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 ‘주체적 자유인’(초인)이 되기 위해, 프로이트는 고통스럽게 반복되는 신경증 증상이 (유아적, 무의식적) 환상에 기인한다는 이유 때문에, 환상의 환상성을 철저히 직면, 인식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각각 주장한다. 

<프로이트 이후>

현대 정신분석학자들에게도 환상은 중요한 관심 주제 중 하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정신분석계의 주류를 이루어온 ‘자아심리학’은 정신 내부 기관들 사이의 내적 갈등과, 유아적 성환상, 이에 대한 부적절한 방어기제 등을 신경증의 주요 원인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에 영향 받은 자아심리학에서 개인이 ’실재’를 정확히 인식했느냐 아니냐는 관심의 초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현실 환경’과 즐겁고 유익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적응능력’을 지녔느냐이다. 실재를 ‘정확하게 인식’하고자하는 의지를 과도하게 지님으로써 그것이 현실 관계에 부작용을 초래할 경우, 그것은 이 세상을 지나치게 ‘주지화’하려 드는 병리적 방어태도로 간주된다.

클라인에 의하면 아이는 선천적으로 본능에 내재된 무의식적 환상들을 지닌다. 그리고 원초적 방어기제인 ‘분열’과 ’투사-내사’에 의해 정신 내부에 ‘내적 대상’들을 형성한다. 유아기에 형성된 ‘내적 대상’은 정신을 구성하는 ‘심리적 실재’가 되어, 이후의 외부 대상 지각에 평생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 환상’으로 작동한다.

위니컷은 아기의 타고난 공격성이 최초양육자인 엄마에게 온전히 담아지고 부드러운 양태로 되돌려질 때, 아이는 원초적 불안에서 벗어나 세상에 대해 자신을 솔직하고 창조적으로 드러내는 ‘진정한 자기’를 형성한다고 본다. 반면에 엄마가 아이의 공격성을 담아주지 못한 채 화를 내거나 외면할 경우, 아이는 내부 공격성을 감당하지 못해 죽을것 같은 불안상태에 처하게 된다. 미성숙한 자아를 지녔기에 불안을 감당할 수 없는 아이는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자기’의 욕구표현을 포기한 채 환경에 순응하는 거짓자기를 형성하게 된다. 거짓자기는 실재에 대한 성찰에는 무관심하며 오직 불안 없는 ‘안전’에만 관심 둔다. 그 결과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나 ‘타인과의 진정한 교류’를 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안전을 보장해줄 ‘환상적 대상’을 끊임없이 갈구하게 된다. 

코헛에 의하면, 유년기에 ’과대자기’와 ‘자기애’가 충족된 자만이 실재에 대한 온전한 인식과 편안한 관계맺음을 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진정으로 존중받는 과대적 ‘자기대상’ 경험과, 아이가 동일시하고픈 ‘이상적 자기대상’ 경험이 결핍되면 ‘자기애적 인격’이 형성된다. 자기애적 인격은 정신의 일차적 관심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자기중심적으로 충족시켜줄 ’자기대상’ 경험에만 쏠리게 된다. 그 결과 세상은 자신의 자존감을 보충해주는 대상과 손상시키는 대상으로 양극화(환상화)되어, 대상과의 전인적 교류나 대화가 힘들어진다. 

라깡은 태어날 때부터 개인을 운명적으로 둘러싸는 상징계(‘언어적 분별체계’)가 개체의 정신구조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아이는 유아기에 이미지들에 집착하는 ’거울단계’를 겪게 된다. 자기도취적 상상계인 이 이미지 애착상태를 벗어나 소위 ‘인간적 사고의 주체’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상징계’를 정신에 온전히 수용(내면화)해야 한다. 상징계를 충분히 습득한 후에는 그것의 정체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상징계와 교류하는 동시에 때로 그것의 제약에서 벗어나 삶을 향유할 줄 아는 ’진정한 주체’가 된다. 

의미들을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보이지않는 ’거대한 타자’(메트릭스)인 상징계는 아이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부모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된다. 초주관적 거대타자인 상징계는 일차적으로 언어적 그믈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모를 통해 아이의 정신에 ‘각인’되는 ‘언어’가 유발하는 무의식적 환상의 힘은 대단하다. 특히 상징계를 대변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개인의 무의식 구조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것은 쾌락원칙을 추구하는 원초적 본능존재였던 아기를 ’상징적 정신성을 지닌 인간’으로 변형시킨다. 즉, 개인의 무의식을 원초적 지각체로부터 언어적 상징구조로 변환시켜 개인을 ‘자기애적 인생’이 아닌 타자일반의 욕망을 고려하는 존재로 재구성시킨다. 상징계가 정신에 내면화되는 그 순간 인간은 ’원초적 지각, 원초적 본능’을 상실하는 동시에, 상실된 최초의 쾌락대상과 원초지각을 욕망하는 (환상추구) 존재가 된다.

오늘날 ‘정신분석’이란 위에 언급된 환상의 발생 원인들을 다각도로 추적하여 하나하나 성찰함으로써, 그것의 병리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2) 환상의 유형들

환상은 일차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본능욕동(慾動)의 힘”에 의해 생성된다. 따라서 욕동들의 유형과 환상의 유형은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프로이트는 초기엔 생존본능과 성본능[유아성욕(구강욕동과 항문욕동, 남근욕동)과 성기욕동] 그리고 말년엔 삶욕동과 죽음욕동(공격성, 파괴욕동)을 인간의 근본욕동으로 보았다. 따라서 욕동들이 출렁이는 인간의 무의식엔 원시시대부터 유전되어 유아의 정신에서 적나라하게 활성화되는 성환상과 파괴적 공격환상들이 존재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본능으로 유전된 무의식의 환상은 개인의 노력에 의해 완전히 해체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이 운명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정신의 구조를 이루는 환상이다. 프로이트가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녔다고 보는 ‘원초적 환상’은 ’애정 상처-권력콤플렉스-거세불안-남근선망’이 담긴 ’외디푸스 환상’, 탐욕적인 구강환상, 가학-피학적인 항문기 환상, 그리고 유년기 부모 특성이 내면화된 이마고인 초자아 등이다. 

현대 정신분석가들이 주목하는 환상들은 대부분 유년기에 정신에 내면화된 ‘중요 대상’들이다. 유년기에 ‘대상’과 좋은 관계경험을 많이 하면, 긍정적인 대상이미지와 자기이미지를 지니게 된다. 긍정적인 ‘자기표상’과 ‘대상표상’은 정신내면을 구성하는 유익하고 필수적인 환상이다. 반면에 탄생순간부터 만나는 ’최초 대상’으로부터 ‘나쁜 관계’ 경험을 하게 되면 자기 자신과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환상)를 지니게 된다. 
라깡은 대타자의 최초 대변자인 어머니가 뱉은 ’말’이나 상징계에 떠도는 ‘언어’가 아이의 정신에 각인되어 미치는 영향을 주목한다. (부모가 무심코 밷는 말조차, 아이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평생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적 ’근본 환상’을 형성하곤 한다.)

정신분석에서는 타인과의 진정한 교류를 방해하는 ‘주관적 환상’을 병리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상징계의 이데올로기는 비록 실재를 왜곡하는 환상성을 지니지만 타인에 대한 인정과 타인과의 교류에 어느정도 기여하는 ‘보편 환상’이라는 점에서, 주관중심적인 환상과 구별된다.

3) 환상의 구조 

인간의 모든 인식은 무의식의 1차과정과 의식의 2차과정이 타협되어 혼합된 결과물이다. 인간은 ‘의식/무의식’으로 ‘분열된 존재’이며, 의식은 무의식의 영향을 암암리에 받게 되므로, 의식에 의해 ‘실재’를 엄밀히 인식하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은 타인은커녕 자기 자신에 대한 ‘온전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조차 힘들다. 따라서 정신분석적 ‘인식론의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환상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자각하기보다 회피하면서 자기주장의 절대적 진리성을 함부로 주장하는 데에 기인한다.

4) 환상의 의미

인간에게 환상이 보편적으로 반복해서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나름의 ‘심리적 기능ㆍ심리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유형의 환상을 얼마만큼이나 지니며,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삶에 유익하느냐에 있다. 이를 총체적으로 판단하려면 ‘인간’이 어떤 본질과 지향성을 지닌 존재이며, 인간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철학적 숙고가 필요하다. 
이점에서 ‘정신분석’이 밝혀낸 환상의 원인, 유형, 구조, 의미는 수천년간 축적된 철학적 지혜와의 교류를 필요로 한다. 가령 정신분석과 불가의 환상론은 어떤 연관성을 지닌다. 

2. 불교의 환상 관점 : 연기론과 유식론

불가는 ‘진리’(실재의 본성)를 인식하여 환상에 기인된 심리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데 큰 가치를 부여해왔다. 그렇다면 불가는 환상의 본성과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불가가 비유로 표현해온 환상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일차적으로 환상은 ‘실재’ 인식을 방해하는 베일, 또는 실재에 대한 왜곡된 표상들이다. ‘실재’를 인식해본 적이 없는 보통의 인간은, ‘진리/환상’의 분별에 관심을 쏟지 않은 채 환상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인간이 무지(무명)를 벗어나기 힘든 것은 정신을 안정시키는 일상의 중요 관념들에 환상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상을 해체시키면, 생존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나’를 비롯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들을 영원한 “실체”라고 믿는 환상이다. 

‘실체’ 관념이 수천 년의 인류 정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영원하고 힘있는 무엇과 융합하고 싶은 욕망에 기인한다. ‘실체’ 관념은 ’영원한 존재’가 되고픈 인류의 고상한 욕망(욕심)의 결과물인 동시에, 욕망충족의 좌절을 유발함으로써 고통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부처는 ‘나’와 내가 욕망하는 대상들이 ’영원한 실체’가 아님을 ‘연기설’을 통해 자각시킨다. 연기설에서 영원하고 자립적인 ‘실체’는 실재가 아닌 환상이다. ‘나’와 내가 이상화한 욕망대상(신, 왕,..)이 ‘실체’가 아니라면, 그것은 무엇인가? 
인간을 포함한 존재일반이 ‘실재 대 환상’이라는 이분법적 관념으로 온전히 설명되는가? 불가에서는 비실체적인 존재자들에 대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현실에서 환상을 어떤 방식으로 대면하는가? 이 물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화두이다.

불가의 유식론은 인간이 자신과 외부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8식’으로 분류한다. 기초적인 5단계는 감각지각의 단계다. 6단계는 분별하는 의식과 분별 기준이자 모델인 ‘법’이다. 7단계는 모든 감각과 분별을 조화롭게 통합하고 응집시키는 무엇으로서의 ‘나’라는 실체 관념이다. 8단계는 의식으로는 좀처럼 분별하기 힘든 미세한 비의식적 인식이다. 성철은 <백일법문>에서 1단계부터 8단계 아뢰아식까지의 속박들을 모두 벗어나야 비로소 세속의 편견들과 무명(환상)을 벗어나 ‘실재’가 제대로 보여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감각지각은 외부세계와 ‘나’를 인식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통로이다. 그러나 감각지각 내용이 곧 실재 그 자체인 양 생각하면, 감각은 ‘실재’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고 왜곡하는 무명과 환상의 원인이 된다. 대상에 대한 원초적인 감각지각은 의식의 판단과 분별을 기다리는 인식의 기초 재료들일 뿐이다. 의식은 자기 자신과 외부세계를 언어와 논리를 통해 세세히 ‘분류’하는 활동을 한다. 이러한 분류는 인간에게 안전한 질서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언어와 논리의 틀에 갇히게 만들어, 실재와의 전체적 만남을 방해하는 양가 가치를 지닌다. 의식은 실재를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통로이지만, 그것을 마치 총체적 인식의 보증수단인 양 믿을 때, 무명과 환상의 원인이 된다. 
7식인 ‘나’....


II. 실천적 응용(고통 치유방법)

현대 정신분석가는 전통 불가의 ‘선사(큰 선생)’들이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 깨달음에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들과 비교되는 독특한 실천 방법을 갖고 있다. 
그들은 먼저 자신의 무의식적 환상을 깨우치기 위해 하루에 50분, 일주일에 4-5번, 수년간을 교육분석가(큰 선생)로부터 ‘정신분석’ 받는다. 이 분석기간 동안에 정신분석가 지망생(구도자)은 자신 속에 잠복하여 삶을 좌우해왔던 수많은 무의식의 환상들과 ’뜻밖에’ 만나는 강렬한 ‘정서적 인식’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수년간에 걸쳐 무의식적 환상의 원인, 기능, 의미 등등에 관해 동료들과 더불어 공부를 한다. 이때 ‘공부’는 머리로 이해하는 관념적 인식이 아니라, 수십년간 쌓아온 의식의 질서가 무의식의 정서에 의해 뒤집혀질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면서 ‘머리와 감정’을 함께 체험하는 ‘자기분석’ 활동이다.

정신분석과 ‘정서적(체험적) 인식’ 그리고 ‘자기분석’은 종래의 ‘학자와 학문’들이 안주해온 ‘관념적 인식’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것은 의식으로 8만가지 의미 분별을 뽐내듯 행하는 지식활동이 아니다. 정신분석은 전통 학문들이 지녀온 의식중심적 함정을 이미 충분히 자각하고 있기에, 그 한계에서 벗어나는 탈학문적 ‘실천’ 기법을 지닌 지행합일적 활동이다. 

먼저 자기 자신이 ’정신분석’을 받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후 내담자를 정신분석 하는 과정에서 정신분석가는 일상적인 의식의 눈으로는 지각할 수 없었던 고태적 ‘환상’과 유아적 환상들을 성찰할 수 있게 된다. 그 성찰을 통해 과거에 집착하게 하는 환상들로부터 벗어나, ‘현실’의 대상들과 ‘현재의 차원’에서 전체적이고 공감적으로 관계하게 된다.
위니컷은 정신분석을 통한 이러한 변환을 ‘거짓자기’에서 ‘참자기’의 회복으로, 라깡은 거세된 ‘주체성의 회복’으로 본다. 

정신분석의 가장 큰 무기는 환상을 일으키고 고착시킨 무의식의 욕동, 욕망, 갈등, 상처, 결핍, 불안, 방어기제 등에 대한 치열한 직면과 ’해석’이다. 불가의 선사들은 각 수행자의 정신 수준에 맞게 적절한 때를 포착하여 비유적 언어와 비언어적 표현으로 ‘해석’을 표출했었다. 이와 유사하게 정신분석가의 해석은 내담자가 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숙성되어 분석가의 ‘해석’을 받아들일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에 ’의식이 예상치 못하게’ 내담자를 향해 던져진다. 의도되지 않게 갑작스레 던져진 ‘해석’이어야 그 해석언어가 내담자의 정신과 정서 밑바닥까지 깊숙이 각인되어, 깊은 깨달음인 ‘정서적 인식’을 일으킨다. 이런 초의식적 해석을 통해서야 비로소 수십년간 ‘반복’되던 무의식의 환상이 해체되거나 수정된다. 

대상관계론자들이 제시하는 정신분석의 또 다른 무기는 ’공감, 지지’와 ’분석가-수행자’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 체험’이다. 
라깡은 무의식의 근본환상을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무의식에 잠재된 기표들이 예기치못하게 분출되는 경험들이 충분히 반복해서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현대 정신분석가들은 7-8유형의 정신분석학파들이 제시하는 ‘임상적 경험지식’들을 내면화해, 환상을 구체적으로 ’직면-해체’하고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고유한 비법을 소유하고 있다. 

 

 

출처: 프로이드정신분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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